
요즘 웬만한 영상은 영자막으로 보는 중인데, 현재 내 수준에서 처음부터 영자막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와 아직은 한국어 자막에 의지해야 할 콘텐츠 유형을 인제 대강 알아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맥락이 입체적이고 특정 분야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작품이면 처음부터 영자막으로 보기가 좀 어렵다. 애플TV 3개월 무료구독이 이제 한 달쯤 남아서 뒤늦게 부랴부랴 이것저것 보는 중인데, 〈센트럴 파크〉처럼 대사도 많고 그 대사가 되게 머리 써서 복잡하게 짠 거면 이런 건 처음부터 영자막으로 보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코미디는 대체로 웬만큼 가벼운 일상물이 아니면 처음에는 한국어 자막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대신 오늘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를 드디어 봤는데, 이 정도는 영자막으로 봐도 괜찮을 것 같다. 〈센트럴 파크〉 보다가 좀 쫄아서 한국어 자막으로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영자막으로 돌려서 끝까지 봤다. 영화 단독으로는 좀 힘이 약한데, 대신 미술적인 구현이 예뻐서 동명 원작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 소설 먼저 읽고 심심할 때 보면 제법 시각적으로 보는 재미가 있다. 다만 스토리라인이나 연출이 좀 빈약한 편이다. 오늘 소개할 대사는,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 만큼이나 연출이 가벼운 넷플릭스의 히트작 〈퍼스트 킬〉에 나오는 건데, 영어 얘기는 아니고, 내가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를 통해 배운 미국 문화에 관한 얘기다. 몇 년 전에 한창 〈섀도우 헌터스〉를 열심히 본 적이 있는데, 저렴한 세트와 얄팍한 스토리라인 등 만듦새 면에서 비슷한 장르물이다. 작품의 주요 맥락과 크게 상관없는 대사라서 오늘은 맥락 소개는 생략하기로 한다.

I spent months there after Boston.
보스턴에서 넘어가서 몇 달 지냈어

- Harvard?
- Undergrad, business school.
- 하버드?
- 어, 경영 대학원 과정이야 ‘크엑걸’의 주인공 레베카 번치가 하버드대 출신이란 설정이라서 드라마에서 하버드 관련 농담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하버드 출신들이 뻐기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출신 학교 이름을 바로 대지 않고 ‘보스턴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학교’라고 설명한다는 내용이 심심찮게 언급된다(위 대사에서 ‘보스턴에 있었어’도 비슷한 어조). 레베카나 레베카가 가짜 남자 친구로 삼으며 등장한 하버드 동문 트렌트, 실제로 하버드대 출신인 코미디언 B. J. 노박 등이 출연해 하버드대 이리저리 농담에 활용됐는데, 코미디가 진짜 어려운 게, 문화를 먼저 읽어내지 않으면 영 재미가 없다. 아마 그래서 냅다 영자막만 읽어서는 바로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다 쓰고 보니까 전부 ‘크엑걸’ 얘기가 돼 버렸는데, 〈퍼스트 킬〉은 순혈 흡혈귀와 사냥꾼 가문 딸들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금지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십 대들의 혈기가 개연성인(?) 가볍게 볼 수 있는 틴에이지 로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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