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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미묘

“참을 만큼 참았어” from 〈패딩턴〉

몇 번 봤는지 기억도 안 나게 심심할 때면 그냥 생각 없이 틀어서 보게 되는 영화가 있는데, 〈패딩턴〉도 그중 하나다.

미국식 이민자 서사가 디즈니의 〈인어공주〉 중에서도 ‘Part of Your World’라는 뭍의 인간 세계를 동경하는 에리얼의 노래로 잘 그려져 있다면, 영화 〈패딩턴〉은 ‘패딩턴’이라는 어린 곰의 시선을 통해 이민자로서 바라보는 런던을 마술적 사실주의를 동원해 동화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한창 영국에 있을 때나, 한국 집으로 돌아온 직후 한동안까지도 이 영화를 보기가 좀 힘들었다. 나는 패딩턴만큼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고, 패딩턴처럼 무모하게 사람들과 교류하려는 시도를 하지도 못했으니까. 다행히 지금은 그 경험을 좀 더 거리를 두고 메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는 거니까, 다음에는 나도 패딩턴처럼 좀 더 무모하게 시도해 봐야지.

I’m sorry, but that was the last straw.
미안한데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오늘 소개할 대사는, 헨리가 패딩턴을 더는 제 집에 두지 못하겠다며 뱉는 말이다. last-straw에서 연음 현상이 생겨서, 처음에는 last draw라고 하는 줄 알았다.

여기서 straw는 우리가 잘 쓰는 빨대의 스트로도 되고, 보통 제비뽑기를 drawing straws라고 하는데, 이때 뽑는 제비도 straw다. 그래서 뭔가 rolling the dice(주사위를 굴리다)처럼 the last straw도 더는 위험 상황에 내 운을 맡기지 않겠다는 뜻으로 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Mrs. Brown says that, in London,
everybody is different.
메리 아줌마는 런던 사람들이
다 천차만별이라고 해요

But that means anyone can fit in.
하지만 그 덕분에 누구든
런던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래요

영화를 마무리하는, 옛 런던 이민자의 가슴을 울리는 패딩턴의 내래이션ㅜㅜ…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버전은 영어 자막도 없고, 한국어 자막도 번역자 크레디트가 따로 안 뜨던데, 자막 스타일을 보면 아마 극장 상영 때 자막을 가져온 게 아닐까 싶다. 일반 스트리밍 자막 스타일과 비교하자면 극장 자막이 확실히 더 간결하고 최대한 말을 꼬지 않으면서 친절한데, 대신 필요할 경우 종종 원문을 적당히 뭉개서 이 부분에서 VOD 자막과 스타일 차이가 좀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