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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미묘

“무대 공포증이 심해” from 〈컵헤드 쇼!〉 S1E05

어제까지 마감 하나 끝내고 오늘까지 일하면 우울해질 것 같아서 하루 쉬었다. 청소도 좀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노곤노곤하게 졸면서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신규 업로드작을 보았다. 〈컵헤드 쇼!〉라는 복고풍 만화인데, 개별 회차간 연결성은 떨어지지만 대신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와 호시탐탐 시민들의 영혼을 노리는 악마라는 설정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아직 특별한 매력을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그냥 분위기가 좋아서 생각없이 보는 중이다.


맥락 타임🕰
이 만화에는 컵헤드와 머그맨 형제가 등장하는데,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대강 봤을 때는 컵헤드가 형인 것 같다. 컵헤드가 ‘주사위를 굴려라’라는 이름의 퀴즈쇼에 나와서 머그맨을 지인찬스로 부르는 장면이다.

My brother, Mugman, is the smartest person I know.
내 동생 머그맨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거든요.

It apears your help line is frozen in terror.
컵헤드의 지인찬스가
그만 겁먹고 굳었나 봐요

Oh, right. Mugman’s got really bad stage fright.
맞다, 머그맨이
무대공포증이 완전 심해요. 어제 일하면서 딴짓하느라 본 백상예술대상 클립 중에 김태리 씨 수상소감이 인상적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연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무대공포증이 심하다고 하던데 시상식 무대에 올라가 소감을 말하는 모습에서 그 떨림과 감정이 함께 전해져서 뭔가 좀 더 멋있고 뭔가 더 깊이 와 닿았다. 무대공포증이 있다고 말할 때는, I’ve got really bad stage fright이라고 하면 되는데 이걸 살짝 응용해서 She has a really bad/poor sense of humour/direction.이라고 하면 전자는 말 그대로 “유머 감각이 좋지 않다”, 후자는 “길치”라는 뜻으로 쓸 수 있다.

보니까 〈컵헤드 쇼!〉 더빙 지원도 되는 것 같아서(보통 1화 틀면 자동으로 더빙판이 재생된다) 나중에는 더빙판으로도 한번 볼까 한다. 개인적으로 만화는 다른 자막에 비해 문장을 좀 더 구어체스럽게 작업하는 스타일인데, 이를테면 “Mugman is the smartest person I know.” 같은 문장도 때에 따라서,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똑똑해요!”라고 원문을 세세하게 살리는 게 더 좋을 때가 있고 이번처럼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거든요.”라고 하는 게 더 잘 어울릴 때가 있고 그때그때 다른데, 이럴 때 나는 보통 시청자로서의 감을 활용하는 편이다.

군더더기가 적고 매끄러운 번역 문장을 만들고 싶을 때 는 더빙 번역을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 확실히 더빙이 말 맛이 더 매끄럽게 감기다 보니, 더빙으로 보다가 자막으로 보면 이전까지 안 보이던 군더더기 요소들이 눈에 더 잘 띄는 것 같다.